기원전 131년, 로마 공화정은 페르가몬 왕국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. 이 해에 로마의 집정관이자 폰티펙스 막시무스였던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무키아누스는 페르가몬의 반란자 아리스토니코스(에우메네스 3세)를 진압하기 위해 소아시아로 원정을 떠났습니다. 그러나 크라수스 군대는 아리스토니코스에게 크게 패배했으며, 크라수스 본인도 전투 중 포로가 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여 전사했습니다. 이 사건은 로마가 동방에서 겪은 주요 군사적 좌절 중 하나로 기록되며, 페르가몬 왕국의 합병 과정에 일시적인 어려움을 주었습니다. 그의 죽음은 로마 공화정 내의 정치적, 군사적 동요를 가중시켰습니다.